Top 7 창세기 22 장 강해 20072 People Liked This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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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31) ‘아브라함의 시험’/창세기2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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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22장 강해 –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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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22장 강해 -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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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모리아 산의 이삭 번제(창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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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모리아 산의 이삭 번제(창221-14)

모리아 산의 이삭 번제(창 221-14)

[창세기 22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모리아 산의 이삭 번제(창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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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강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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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강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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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2(금) “창세기 22:1-24” / 작성: 이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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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2(금) “창세기 22:1-24” / 작성: 이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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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아브라함 설교말씀] “아브라함에게 닥친 사람의 시험”(창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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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아브라함 설교말씀] “아브라함에게 닥친 사람의 시험”(창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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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아브라함 설교말씀] “아브라함에게 닥친 사람의 시험”(창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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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호크마 주석, 창세기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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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호크마 주석, 창세기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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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창세기 2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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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학 – 창세기22장주석. 아브라함의 믿음의 큰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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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22장 강해

창세기 제22장 강해 –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에 대한 시험(test)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 통과하여 미리 예비해 두신 수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그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명명하였습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일’이란 ‘그 말들’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으로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과 가나안과 애굽과 그랄에서의 모든 일들 또한 이삭에 대한 약속 등입니다. 이제 이전의 모든 일들을 일단락 짓고 이제 새로운 사건을 전개하는 전환점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시험(test)하기 위함입니다. 마귀의 시험은 Test가 아닌 Temptation(유혹)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를 정금과 같이 연단하시기 위함이며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관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벧전 1:7).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깨어있는 영혼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부르심은 그를 통하여 일을 성취하시고자 함입니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면서도 그 앞에 ‘네 사랑하는 독자’라는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이라는 세월과 하갈과 사라의 갈등을 통하여 100세에 낳은 아이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시험의 강도를 더욱 높이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사를 주신다는 언약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아이를 모리아 땅에 있는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명령은 이삭을 실제로 짐승과 같이 제물로 잡아서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 명령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심정은 아픈 정도가 아니라 정말 찢겨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추측컨대 아브라함은 긴 밤을 고통과 번민 속에서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명령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 때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요, 그 말씀을 순종할 때에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 준비를 하고 번제에 사용할 땔감까지도 준비하였습니다.

4: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이 거하고 있는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당시에 3일 길(약 70km)이었습니다. 막상 이삭을 번제로 드릴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3일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을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학자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날부터 모리아 산까지 오는 기간이 4일 간이 걸렸다는 것을 해석할 때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기 전 미리 4일 전부터 다른 양들과 구별하여 놓고 혹시 흠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이삭이 번제물로 드려지게 되는 것은 유월절 희생양이 4일 동안 정결 상태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습니다(출 12:1-6).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동행한 두 사환에게 말하기를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한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면서 남아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뜻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에 가서 제사를 드린 후에 함께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으로는 사리에 맞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으므로, 돌아오는 것은 아브라함 혼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17-19에서는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하여 ‘믿음’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은 알지 못하지만 이삭을 번제로 드릴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다시 함께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은 3일 동안 걸어서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 왔습니다. 이는 이삭이 3일 동안 걸어도 괜찮고, 번제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를 수 있는 건장한 모습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행하는 모습은, 아버지는 마음에 큰 고통을 안고 침묵으로 걸어가고, 이런 모습을 본 이삭도 역시 궁금하지만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산에 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내 아버지여, 내 아들아’ 부자지간의 정다운 대화의 모습입니다. 이삭은 번제할 어린 양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이삭이 번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는 이미 하나님께 경배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경배에 따른 번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외형적 경배와 함께 번제 즉 온전한 믿음의 자세가 갖추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번제에 대한 질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제물이 될 이삭 대신에 다른 제물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삭이 궁금해 하는 제물에 대한 준비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행해질 것이라는 뜻이라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맡기는 자세입니다.

9,10: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하나님께서는 지시하신 곳은 모리아 산의 어느 한 지점으로 후일 그곳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입니다. 일단 단을 쌓았습니다. 단은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돌을 모아서 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았습니다. 제물이 완전히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내밀어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할 때에도 반항을 하지 않았으며, 칼로 잡으려고 할 때에도 울부짖음이 없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100이 되어 낳은 자식을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십자가까지도 질 수 있는 주님의 모습에 대한 예표로 온전한 순종의 자세입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여기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확인한 즉시 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지체하게 되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정말로 짐을 잡듯이 잡을 것이며, 이삭의 죽음은 곧 여호와의 언약의 파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급하게 서두르시도록 할 수 있는 믿음이, 가장 원하시는 믿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잡으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헌신을 참으로 기쁘시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말씀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으로 인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했다는 선언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사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자신 즉 예수님께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경외’는 하나님을 무섭고 두려운 공포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존귀와 위엄 속에 택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까지 포함한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에 제물로 들릴 다른 대속물을 찾았습니다. 뒤에 수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잡아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 대속물은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이레(יהוה יראה)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제물뿐만 아니라 후일에 이곳에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모형이 여기에서 준비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로부터 경배를 받을 것이며, 성전 가운데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15,16: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아브라함을 부른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한 보답의 차원입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는 천지만물 중에 가장 높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맹세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맹세는 결코 변함이 없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아브라함이 순종으로 바치려고 한 이삭을 통하여 주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문은 성읍을 드나드는 출입구이므로, 문을 얻는 것은 원수의 성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는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실 것이라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네 씨’는 이삭이나 그의 후손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것도 포함하여,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임을 뜻합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나의 말을 준행’ 즉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이삭을 데리고 산에 오를 때에 사환에게 말한 대로 아브라함은 이삭과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브엘세바로 다시 돌아가서 계속 거주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0: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이삭의 번제 사건 이후에 어떤 사람, 아마도 아브라함의 고향 사람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여행 중에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아내 밀가가 자녀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일 후에’라는 말이 내용을 전환하는 말이므로, 번제 사건은 일단락 짓고 이삭과 관련된 다른 일이 전개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1-24: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무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움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나홀과 밀가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의 명단입니다. 이 중에 ‘브두엘’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 뜻은 ‘하나님게 속한 자’입니다. 매우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브두엘의 딸이 ‘리브가’로 이삭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2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모리아 산의 이삭 번제(창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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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2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모리아 산의 이삭 번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속사 관점으로 볼 때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됩니다.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바쳐진 주님의 모형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로 마음을 먹고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죽여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시고 숫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 세상의 재물보다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 시간 주님께 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리아 산의 이삭 번제(창 22:1-14)

히브리어 원문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22절은 바예히 아하르 하데바림 하엘레 베하엘로힘 니사 에트 아브라함 바요메르 엘라이브 아브라함 바요메르 힌네니입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1절

그 일 후에 – 여기서 ‘일'(다바르)이란 문자적으로 ‘말'(言語)을 의미한다(11:1). 따라서 지금까지 주어진 축복 혹은 언약의 통괄 지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건'(롯 3:18)이란 뜻도 지니므로 ‘그 일 후에’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 전개에 대한 머리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앞의 사건과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격차가 있음을 나타내 주는 문장 연결어로도 볼 수 있다. 이때는 이삭이 번제용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만큼 충분히 자랐을 때이다(6절).

시험하시려고 – 성경에 나타난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단에게서 기원한 시험으로(엡 2:2), 인간을 타락케 하는 유혹(temptation)이다(3:1-6).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의한 시험으로 성도의 신앙을 증험(證驗) 해 보는 테스트(test)이다(욥 23:10). 여기서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후자의 경우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에 인간적인 생각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 순종의 시험이었다.

그를 부르시되 – 일전에 말씀으로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였던 것과 동일한 방식의 계시이다.

아브라함아 하시니 – 명령을 계시하시기 위한 부르심인데 단 한 마디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당시 상황의 긴박성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무슨 일이든지 이르는 대로 청종하겠다는 결의에 찬 응답이다(사 6:8). 이는 성도가 항상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 대답인데 언제 어느 곳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신의 영적 현주소는 ‘하나님 앞'(coram Deo)이란 사실을 잊지 않을 때만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다.

2절은 바요메르 카흐 나 에트 빈카 에트 예히드카 아쎄르 아하브타 에트 이츠하크 베레크 레카 엘 에레츠 하모리야 베하알레후 솸 레올라 알 아하드 헤하림 아쎄르 오마르 엘레이카입니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2절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 3중으로 강조된 점층법적 표현이다.즉 (1)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사람 (2) 그중에서도 100세에 낳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자 (3) 이스마엘이 떠난 후 자신에게 넘은 유일한 혈통이며 25년을 기다려 얻은 ‘언약의 아들’이란 점을 강조한 말이다. 이 말에는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정을 최고도로 불러일으켜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그러한 상황 하에서도 자신의 명령에 순종토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연단의 의미가 담겨있다.

모리아 땅 –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브엘세바(21:32-34)에서 사흘 길거리에 위치한 예루살렘의 산악 지대이다. 한편 ‘모리아'(모리야)는 ‘마르에’와 ‘예호와’의 합성어로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이란 뜻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을 지정하시고 선택하셨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곳뿐 아니라 훗날 솔로몬 성전이 건립될 장소(대하 3:1)로 이미 택정 해 놓으셨던 것이다.

번제로 드리라 – 인신 제물(人身祭物)로 바치라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나 신앙으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난제(難題)였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1) 이는 피 흘리는 것을 싫어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던 하나님의 속성(9:4-6)과 상치되며 (2) 거듭된 약속과 맹세 속에 겨우 태어난 유일한 약속의 씨 이삭을 다시 거두어 가려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약속(17:5, 6)과는 일견 모순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3절은 바야쉐켐 아브라함 바보케르 바야하보쉬 에트 하모로 바이카흐 에트 쉐네 네아라이브 이토 베에트 이츠하크 베노 바예바카 아체 올라 바야콤 바옐레크 엘 하마콤 아쎄르 아마르 로 하엘로힘입니다.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22:3절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서두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기쁜 마음으로 명령에 순종했다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밤잠을 못 이루면서 심한 고통과 갈등을 겪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순종밖에 없고 하나님은 어떠한 식으로든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어 주실 줄 믿었기에(롬 4:21) 그는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였을 것이다(막 14:36).

번제에 쓸 나무 – 번제(Burnt Sacrifice)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 죽인 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火祭)이다. 따라서 불을 피우는 데 사용될 나무가 필요하다. 그런데 팔레스틴의 구릉 지대엔 대부분 나무들이 없었기에 번제용 나무를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한편 아브라함의 집에는 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짐승과 다른 종들도 있었는데 굳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불에 태워 바치라고 요구하셨으니 이것은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는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벧전 4:12)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모리아 산까지의 삼일 길, 즉 약 80Km 여정(旅程)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 주는 헌신과 순종의 길이자 지성소를 향한 속죄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이 번제로 드려졌듯이(13절) 훗날 이곳에 세워진 솔로몬 성전에서도 역시 인간을 대신한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이다(대하 5:6).

4절은 바욤 하쉘리쉬 바이사 아브라함 에트 에나이브 바야르 에트 하마콤 메라호크입니다.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22:4절

제 삼일에 – 지시받은 날(1절)로부터는 나흘째이다. 상징적이긴 하나 이것은 유월절 나흘 전에 미리 양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출 12:3,6)과 일치한다.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이 지정한 곳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셨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하나님은 햇빛에 영롱히 반사되는 구름 덩어리를 그곳 모리아 산에 머물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쉽게 제단 쌓을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5절은 바요메르 아브라함 엘 네아라이브 쉐부 라켐 포 임 하하모르 바아니 베하나아르 넬카 아드 코 베니쉐타하베 베나쓔바 알레이켐입니다.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22:5절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 원어 성경에 의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우리’라는 복수 1인칭이다. 이는 종들을 따돌리기 위한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죽은 것과 같은 자신의 몸에서 독자 이삭의 기적적 탄생을 체험한 아브라함(롬 4:18-22)은 비록 지금 이삭이 죽임 당하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다시 살아날 줄을 믿었다(히 11:17-19)고 성경이 친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내가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에 올라갔다가 함께 내려오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미 올라가기 전에 아브라함은 이삭이 살아날 것을 믿고 있었다는 증거다.

6절은 바이카흐 아브라함 에트 아체 하올라 바야셈 알 이츠하크 베노 바이카흐 베야도 에트 하에쉬 베에트 하마아켈레트 바옐르쿠 쉐네헴 야헤다브입니다.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22:6절

이삭에게 지우고 –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옮겨 지우신 대속(代贖) 사역(사 53:4-6;요 19:17)을 연상시켜 주는 장면으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닌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아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이끌고 가는 아브라함의 내적 고통은 그를 침묵케 하였을 것이고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표정은 이삭에게 긴장감과 당혹감, 참된 여행 목적에 대한 궁금증 등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7절은 바요메르 이츠하크 엘 아브라함 아비브 바요메르 아비 바요메르 힌네니 베니 바요메르 힌네 하에쉬 베하에침 베아예 하세 레올라입니다.

창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22:7절

내 아버지여… 내 아들아 – 어색한 긴장감과 침묵을 깨는 대화로 부자(父子) 간의 끈끈한 정이 넘치는 존경과 애정의 부름과 응답이다.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 이는 (1)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가 이미 모세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증거해 주며 (2) 아브라함의 경건 생활과 제사 행위를 통해 이삭이 제사를 드리는 절차와 방법, 필요한 제물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한편 이 질문은 이러한 사실적 의미 외에도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곧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든 인류가 안타깝게 부르짖는 공동의 물음이란 점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수없는 어린양을 죽이고서도 그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사 1:11-14). 그러나 성경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1:29).

8절은 바요메르 아브라함 엘로힘 이르에 로 하세 레올라 베니 바옐르쿠 쉐네헴 야하드브입니다.

창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22:8절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 라아의 동사를 사용했다. 보다라는 뜻이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준비하실 것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이삭의 질문에 대한 거짓말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전에 이삭을 대신할 다른 제물을 준비해 놓으시겠다고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이것은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그리고 선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믿는 확신에 찬 대답일 뿐이다(히 11:17-19).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전의 몇몇 경솔했던 처신(12:10-20; 6:1, 2;20:1-18)을 교훈 삼아 아브라함이 보다 현명하고 성숙된 신앙인으로 변화하였음을 보여 준다.

9절은 바야보우 엘 하마콤 아쎄르 아마르 로 하엘로힘 바이벤 솸 아브라함 에트 하미즈베아흐 바야아로크 에트 하에침 바야아코드 에트 이츠하크 베노 바야셈 오토 알 하미즈베아흐 미마알 라에침입니다.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22:9절

이삭을 결박하여 – 이로써 이삭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혈기 왕성한 이삭은 하려고만 하였다면 노쇠한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였는데 아마 아브라함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작정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삭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를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한 그리스도의 순종(빌 2:8)과 속죄 사역(사 53:5)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순종함으로 화목 제물이 되었다.

10절은 바이쉘라흐 아브라함 에트 야도 바이카흐 에트 하마아켈레트 리쉐호트 에트 베노입니다.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22:10절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바위는 현재는 회교사원이다>

칼을 잡고 – 아브라함이 할 수 있었던 순종의 마지막 행위이다. 따라서 이제 이삭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구태여 이삭을 죽이지 않더라도 아브라함의 신앙은 입증되었으며 제사의 정신도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신 까닭(12절)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비록 이삭은 죽지 않았으나 죽었고, 죽었으나 다시 살아났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페러독스(paradox)이다(마 10:39; 16:25; 12:15). 한편 여기서도 이삭의 순종은 간과되어선 안 되는데 아브라함의 칼 앞에서 잠잠했던 이삭의 모습은 병정들의 창칼 앞에서 잠잠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해 준다(마 26:47-56).

11절은 바이크라 엘라이브 말아크 아도나이 민 하솨마임 바요메르 아브라함 아브라함 바요메르 힌네니입니다.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1절

여호와의 사자 – 일전에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분(16:7)과 동일한 성육신(成肉身)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다급한 반복은 사태의 긴박성과 함께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이삭은 결코 죽임 당해서는 안 되며 아브라함은 약속의 상속자인 이삭을 통해서만 진정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해 준다(17:5).

12절은 바요메르 알 티쉘라흐 야드카 엘 하나아르 베알 타아스 로 메움마 키 아타 야다에티 키 예레 엘로힘 아타 베로 하사케타 에트 빈카 에트 예히드카 미메니입니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 12절

네 손을 대지 말라 – ‘아무 일도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셨다는 의미로 이제 그에 대한 시험이 끝났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절대복종하는 믿음만이 가득 차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시험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 하샤크라는 동사로서 억제하다라는 의미다. 칼 완료 시제를 사용하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다는 의미다. 여호와의 사자가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음은 그가 제2위 성자(聖子) 하나님이심을 뒷받침해 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 자신이 근본 하나님이면서도 여호와의 사자가 이처럼 하나님을 객관화시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같이 구별된 위격(位格)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아노라(야다티) – 이는 체험을 통해 전인격적으로 수용한 지식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삭 헌납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전함을 확인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아셨다는 의미다. 칼 능동태 완료 시제를 사용하였다.

13절은 바이사 아브라함 에트 에나이브 바야르 베힌네 아일 아하르 네에하즈 바세바크 베카르나이브 바옐레크 아브라함 바이카흐 에트 하아일 바야알레후 레올라 타하트 베노입니다.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3절

수양(아일) –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는 문장(엘로힘 이르에 로)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단어와 우연히 일치하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분명한 물증(物證)이다.

수풀(사바크) – 팔레스틴에 흔히 있는 잡목들의 가지가 어지럽게 뒤엉킨 상태를 두고 한말이다(시 74:5). 숫양이 수풀에 걸렸는데 아하즈라는 동사를 사용했다.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여 이 숫양은 수풀에 걸릴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스스로 걸린 것이 아니라 걸린 것이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 숫양을 번제물로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들을 대신하여 – 이삭을 대신하여 죽은 한 수양뿐 아니라 역사 이래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수없이 죽어간 흠 없는 짐승들(출 12:5;29:1 레 1:3; 민 6:14)은 오로지 흠 없는 한 어린양의 영원한 제사, 즉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계시한다(히 9:11-14; 13:11, 12).

14절은 바이크라 아브라함 솀 하마콤 하후 아도나이 이르에 아쎄르 예아메르 하욤 베하르 아도나이 예라에입니다.

창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22:14절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돌보신다’는 뜻으로 8절에 의거하여 명명한 이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쓸 것을 미리 아시고 때에 따라 공급해 주시는 분(마 6:25-32) 임을 찬양한 기념비적 이름이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였던 바로 그때 하나님이 마련해 둔 수양을 보게 되는 축복을 얻었듯이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두신 구원 계획에 우리가 믿고 순종할 때 비로소 온전히 주어지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요 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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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강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

창세기 22장 강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

노승수 목사

드디어 아브라함 이야기의 마지막 대목에 도착했습니다. 11:27에서 시작된 데라 톨레도트, 아브라함 이야기의 끝입니다. 12장에 부르심과 약속을 받아 가나안 땅에 당도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를 누이라 말하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씨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많은 재물을 이끌고 나옵니다. 이는 출애굽이 씨의 위기, 재물을 이끌고 나옴. 나온 후에 분쟁의 이야기로 이뤄진 것처럼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이런 전형으로 애굽 사건이 기록됩니다. 13장에서 가나안에 나오자마자 조카 롯과 분쟁을 재산으로 인해 분쟁을 겪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후사로 생각하면서 그에게 양보를 합니다. 롯은 애굽에서 생명의 위기와 그에 따른 트라우마가 컸던 거 같고 예민해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도시들이 있는 소돔 들을 택하고 악한 백성들이 거하는 소돔에 들어가 거주합니다. 그리고 14장에서 소돔 땅에 9개 임금들이 전쟁을 벌이고 이 전쟁의 포로가 된 롯을 아브람이 318명의 집에서 기른 사람을 데리고 구출에 나섭니다. 13장의 양보가 언약에 대한 불성실이라 해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14장에서 롯을 구출하기 위한 아브람의 태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롯의 선택 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13:14-15). 애굽 왕과의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내를 누이라 말하면서 화평을 구하였으나 씨가 없는 중에 가장 근족이며 자신의 후계자인 롯이 사로잡히자 놀라운 용기를 발휘하여 그를 구출합니다. 그를 구출하여 나오다가 멜기세덱을 만나는데 멜기세덱은 히브리서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의 계시는 아브람과 다윗에게 같이 주어지며 특히 다윗에게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계시로 분명하게 설명됩니다(시 110 참조). 아브람은 씨에 관한 어떤 계시를 멜기세덱을 만나며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15장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려워말라고 하시며 나타난 것입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애초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현현 앞에 아브람의 질문은 전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씨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씨가 하늘의 별과 같을 것이라는 약속을 듣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16-18에서 이 씨가 단수인 것을 들어서 그리스도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브람은 이 계시를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습니다(15:6). 16장에서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출생하는데 16장의 목적은 혈통을 따라 나는 것이 아브람의 자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장에서 할례언약이 주어지면서 15장에 일방언약과 달리 쌍무적 성격의 언약이 맺어집니다. 그리고 이 할례언약은 바로 중생에 관한 표로 구약에서 계속 설명됩니다(신 10:16, 30:6, 렘 4:4, 9:26, 겔 44:7-9, 행 7:51, 롬 2:29 등). 중생자에게 율법의 제3용도를 따라 거룩한 의무가 주어지는 것에 대한 가장 단편적인 설명도 이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할례언약 후에 후사가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으로 나게 될 이삭을 통해서 주어지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17:21).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항상 심판과 구원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주어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출애굽 모티프에서 홍해는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사건이나 바로에게는 홍해에서 수몰되는 심판의 사건이며 노아 홍수는 노아의 가족에게는 세례의 사건이나 그외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물이었던 것처럼 씨의 언약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이어서 18장에서 소돔땅에 대한 심판을 그립니다. 17장이 구원의 사건이라면 18장은 심판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중보는 그리스도의 중보의 예표이며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오래참으심과 인자하심과 세밀하게 살피심 중에 일어나는 일인지를 롯을 향한 중보를 통해서 드러내보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19장에서는 롯을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구출하십니다. 그러나 롯의 열매는 그리 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14장의 사건을 겪고도 그 성에 거했으며 13:13에서 설명하듯이 그 땅의 거임은 악인들이었습니다. 롯은 의로웠으나 그의 심령은 상하고 피폐해졌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그에게 더하셨습니다(19:16). 그럼에도 그의 아내는 소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성을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 산으로 피하라는 명령을 듣고도 소알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이도 그에게 들어주십니다. 소알에 이르러서는 두려움에 휩싸여 결국 다시 산으로 갑니다. 산에서는 그의 두 딸은 근친상간을 통해서 후손을 얻습니다. 그게 모압과 암몬이며 이 민족은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할 때, 길을 내어주지 않음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롯의 열매로 보면, 롯은 구원과 거리가 멉니다. 그의 삶은 인간적으로는 의로웠으나 믿음이 없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악인들과 동거하기를 선택하고 많은 경고에서 아브라함의 그늘에 피하기보다 악인들의 틈바구니에서 가정이 파탄이 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도 자비로우며 선하시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20장에서 아비멜렉 사건을 통해서 씨의 위기를 다시 겪습니다. 첫 번째 위기(12장)는 부르심 중에 위기라면 두 번째 위기(20장)는 중생 후의 위기입니다(15:6_칭의, 17장_성화). 그리고 이삭이 출생합니다. 지난주에 살핀 대로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났고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것이 우의라 할 수 있습니다. 생리가 끊어진 여인에게서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누구인가를 보이신 것입니다. 이는 혈통으로 되는 약속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되는 약속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사건 후에 아비멜렉이 와서 화친을 청합니다. 그리고 브엘세바의 언약이 맺어집니다. 쉐브아는 지난주 말씀드린 대로 일곱을 세바는 우물을 의미하며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을 따로 구분한 것은 이 우물이 7개였음을 암시합니다. 신약에서 우물과 거기 생수는 특히, 요한복음에서 성령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씨인 이삭을 얻고 나서 화친의 약속과 함께 우물을 되찾는 것은 단지 사건의 무작위적 배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표를 보여주시는 것이라는 점을 지난주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2장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제가 이렇게 아브라함의 전생애를 길게 다시 요약해 말씀드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22:1). 그 시험의 내용은 모리아 산으로 가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리아 산은 후에 다윗이 계시를 받은 타작마당(심판)이며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산입니다(대하 3:1). 하나님은 아브람을 12장에서 부르셨고 17장에서 완전하라하셨습니다. 그리고 22장에 들어서 그를 시험하십니다. 그 시험의 내용은 그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22:12). 그리고 그 경외함은 독자라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의 교육이나 유학, 결혼을 위해서 여러분의 제물을 아끼지 않으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그와 같은지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믿는 것과 아는 것에서 하나되는 자리에 대한 시험입니다(엡 4:13). 여러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 이런 요구를 하나님께 받았다면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자리에 섰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시험 밖에 주시지 않으시며 당할 즈음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십니다(고전 10:13). 어떤 사람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상으로 헌신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에 하나님을 경험하여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믿음의 결과이죠. 이에 반대의 증례가 롯입니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살았으나 롯은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 지 못하고 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이런 예를 하나 들어보죠. 이제 막 호감을 갖기 시작한 썸을 타는 남녀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기 시작했죠. 그러나 사랑이라기엔 단지 호감에 불과하고 남이라기엔 궁금하고 알고 싶은 그런 관계입니다. 그런데 남자에겐 아버지가 큰 빛을 남기고 돌아가시고 병중에 투병 중인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돌봐야 할 동생도 넷이나 되었습니다. 빚과 병원비에 허덕이고 밤낮없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동생들을 돌보기도 해야 했죠.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의 그런 형편을 여자에게 감추는 것은 진실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다 이야기 하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여자도 이 남자를 충분히 사랑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 남자와 함께하기로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떠나보낸 여자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이 남자는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서로를 충분히 알기도 전에 자기 사정을 다 말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것을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로 자라기까지는 많은 경험을 공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믿음의 여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경외함을 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의 목회자 본회퍼가 그의 책에서 고대의 교회론을 소개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성에 공주가 있는데 그 성의 공주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만 성문이 열려서 성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재물과 명예와 수많은 것들을 들고 와서 자기의 무용담과 재력과 용기를 과시하며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그 성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젊은 왕자가 그 성에 다다라 여러 고백을 했으나 성문은 여전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동안 왕자를 떠나지 않고 거기 머물렀습니다. 공주와 수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당신입니다” 그 때 성문이 열렸습니다. 이는 고대의 교회론을 보여주는 한 대목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보여주는 은유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헌신을 묻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헌신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저 마음을 그렇게 내었을 뿐입니다. 그의 아들 이삭을 잡는 시늉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뿐인 독생자 성자 예수를 우리를 사랑함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라야 할 곳은 이 연합의 지경입니다.

사랑하는 강남성도교회 성도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럼 이 교회가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를 각자의 형편에서 사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썸을 타는 사람에게 니 인생을 바치라고 하면 교회가 뭉쳐지겠습니까?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교회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교회에 대해 좋은 소문을 내고 교회와 좋은 추억과 감정을 쌓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란 것처럼 우리도 자라야 하는 것이죠. 그 자람에는 상처도 아픔도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한 번도 하나님과 척을 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지 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 결과 영적 파산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심에 미쳐 그를 향한 온전한 헌신과 경외를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 그가 받은 권세는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이며 그 씨가 크게 번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문은 고대에 재판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그 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통치권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씨는 곧 그리스도와 그 후손들이죠. 여러분은 지경은 대적의 성문을 취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하실 때, 밭에 감춘 보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마 13:44). 소작하던 농부는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왜 모든 소유를 팔았습니까? 밭에 보화의 가치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이 헌신은 아브라함은 이 보화를 보았다는 뜻입니다. 앞서 들었던 남녀의 예로 돌아가 봅시다. 썸을 타던 남녀가 서로에게 헌신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의 주변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대 교회론도 이를 설명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사랑을 고백했으나 정작 공주를 몰랐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강남성도교회 여러분, 여러분이 처한 교회의 외적 현실과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초라하기 그지없고 성도는 줄어들고 재정적 부담은 늘어나고 그걸 보면서 사랑할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송파에서 사역할 때, 원로 목사님께서 아침 예배 때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송파 지역에 유학하고 오신 목사님이 교회를 이루어 잘 성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딴 교회 안수 집사가 교회에 등록해 와서 교회 재정 공개를 요구하더랍니다. 그래서 고민하면서 원로목사님을 찾아온 것이죠. 그때 목사님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조언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요구에 교회를 사랑해서 저러나보다 싶어 교회 앞에 공개를 하셨답니다. 빚이 많았던 것이죠. 80여명이 넘게 출석하던 교인이 그 다음주에 40명으로 줄고 물론 그걸 요구하던 안수 집사는 교회에 나오지 않고요. 몇 달이 지나 결국 교회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보다 외적 형편에 더 눈이 간 것입니다. 마치 롯처럼 말이죠. 소돔 들이 더 아름다워 보이던 눈은 결국 망하는 눈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이 바라보셔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독생 성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랑에 믿음으로 선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내게 내어 놓으라는 요구에도 순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돈을 쓰는 곳에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집에 가서 여러분의 가계부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 재산보다 내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가 대적의 문을 취할 것이며 그들이 번성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은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을 매우 무미건조하게 그립니다. 그는 전혀 망설임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들 이삭의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하는 질문(22:7)에 흔들릴 법도 한대,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자신을 위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기도 하며 동시에 계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섭리하셔서 그와 같은 계시적 대답을 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아브라함의 믿음의 정수로 설명하면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다고 말합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은 자기 모든 것과 같은 말년에 얻은 아들도 하나님을 위해서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하였습니다. 잘 되는 교회와 망하는 교회는 아브라함처럼 태도를 취하느냐 롯처럼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신앙의 내용으로서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환경을 바라보느냐에 의해 달라집니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남자를 사랑하느냐 그가 가진 조건에 매몰되느냐 하는 것에 의해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남녀는 우리가 고교 시절 배웠던 왕후의 상, 걸인의 찬이라는 수필처럼 가난한 형편에서도 상대를 바라보고 사랑하면 환경을 이기지만 사랑이 없으면 조건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3월 9일에 리디머 교회에서 은퇴한 팀 켈러 목사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악몽은 거절이다. 힘에 중독된 사람은 굴욕을 당할 때 견딜 수 없다. 안정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안정이 깨지는 고난에 견딜 수 없다. 뭐든지 자신이 통제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불확실한 상황이 그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된다.” 한 사람의 중심에 있는 인생의 동력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이 우상숭배의 근원이 아킬레스건입니다. 이것만 건드리면 픽픽 쓰러집니다. 하나님 외에 자신의 삶에 어떤 동력이나 동기도 남기지 않고 이것을 청산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동기와 동력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성경은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딤전 6:10). 자식입니까? 여러분이 자식에 목을 멘다면 몰록에게 자기 자식을 바치던 우상숭배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명예입니까? 쾌락입니까? 사람들의 인정입니까? 그 무엇이 되었든지 이제 청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강남성도교회 성도여러분 그러나 동시에 여러분의 위치에 맞게 사랑하십시오. 아직 주님과 썸을 타는 중이십니까? 롯처럼 조건을 보지 마시고 주님께 더 관심을 두시기 바랍니다. 혹 이제 밀월에 관계에 들어오셨습니까? 교회를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대해 사랑하며 좋은 소문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헌신하는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여러분의 전 생애를 진력을 다해 교회를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여러분의 형편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시고 그리스도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이면 충분합니다. 그게 썸을 타는 중이든 밀월의 관계이든 여러분이 드릴 수 있는 삶의 전 영역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 오후에도 배웠듯이 어떤 가정도 아버지에게 좀 문제가 있다고 그 자녀들이 세상에 그걸 떠들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그게 사랑이 아니며 그게 나와 가족을 욕되게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서는 너무도 쉽게 그러는 무리들이 있죠. 그것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교회를 욕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희망이 없습니다. 계속 영혼이 피폐해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그렇겠거늘 바른 말씀과 성례가 시행되고 있다면 여러분이 교회를 향해서 가져야 할 태도는 어떠해야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아브라함이 보인 경외가 여러분의 경건이요. 영적 유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간곡한 부탁이요 권면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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