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44 이사야 32 장 강해 Quick Answer

You are looking for information, articles, knowledge about the topic nail salons open on sunday near me 이사야 32 장 강해 on Google, you do not find the information you need! Here are the best content compiled and compiled by the https://toplist.aseanseafoodexpo.com team, along with other related topics such as: 이사야 32 장 강해 이사야 33장 주석, 이사야 33장 설교


[하루 한 장] 이사야32장_ 한 왕이 공의로
[하루 한 장] 이사야32장_ 한 왕이 공의로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 Article author: 100church.org
  • Reviews from users: 29952 ⭐ Ratings
  • Top rated: 3.6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2009년 3월 6일, 금요일 <본문> 이사야 32장 1절-20절 오늘 본문은 앗수르의 압제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가 누리는 복에 대해서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2009년 3월 6일, 금요일 <본문> 이사야 32장 1절-20절 오늘 본문은 앗수르의 압제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가 누리는 복에 대해서 …
  • Table of Contents: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Read More

이사야 32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 Article author: blog.naver.com
  • Reviews from users: 40651 ⭐ Ratings
  • Top rated: 3.3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이사야 32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공지 2022년 7월 31일 주일예배,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 … 이사야 32장 강해 이사야 강해 … 의로 통치하시는 예수님 사32:1~8.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이사야 32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공지 2022년 7월 31일 주일예배,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 … 이사야 32장 강해 이사야 강해 … 의로 통치하시는 예수님 사32:1~8.
  • Table of Contents:

악성코드가 포함되어 있는 파일입니다

작성자 이외의 방문자에게는 이용이 제한되었습니다

이사야 32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이사야 32장 강해 : 네이버 블로그

Read More

[스크랩] 이사야 32장 주석

  • Article author: antiochministry.tistory.com
  • Reviews from users: 20291 ⭐ Ratings
  • Top rated: 3.4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스크랩] 이사야 32장 주석 이사야 32장 주석.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스크랩] 이사야 32장 주석 이사야 32장 주석.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 … 이사야 32장 주석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 Table of Contents:
[스크랩] 이사야 32장 주석

티스토리툴바

[스크랩] 이사야 32장 주석
[스크랩] 이사야 32장 주석

Read More

히브리어 이사야 3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Article author: tripol.tistory.com
  • Reviews from users: 37364 ⭐ Ratings
  • Top rated: 3.4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히브리어 이사야 3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헨 레체데크 이멜라크 멜렠 우레사림 레미쉬파트 야소루 개역개정,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새번역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히브리어 이사야 3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헨 레체데크 이멜라크 멜렠 우레사림 레미쉬파트 야소루 개역개정,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새번역 … 헨 레체데크 이멜라크 멜렠 우레사림 레미쉬파트 야소루 개역개정,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새번역,1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 Table of Contents:
히브리어 이사야 3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히브리어 이사야 3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Read More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2장

  • Article author: nocr.net
  • Reviews from users: 23873 ⭐ Ratings
  • Top rated: 4.4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2장 32:1 정의의 통치 (이사야 32:1-8) 우리는 여기에서 번영하는 왕국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왕들과 방백들과 백성들이 각자의 본분에 충실할 때, 그 땅은 복되도다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2장 32:1 정의의 통치 (이사야 32:1-8) 우리는 여기에서 번영하는 왕국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왕들과 방백들과 백성들이 각자의 본분에 충실할 때, 그 땅은 복되도다 … 호크마 주석, 강해32:1 정의의 통치 (이사야 32:1-8) 우리는 여기에서 번영하는 왕국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왕들과 방백들과 백성들이 각자의 본분에 충실할 때, 그 땅은 복되도다.” 이 대목은 장관들과 신하 모두에게 그들이 마…
  • Table of Contents:

이메일 로그인

This Category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2장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2장

Read More

천안UBF

  • Article author: cnubf.co.kr
  • Reviews from users: 7419 ⭐ Ratings
  • Top rated: 4.4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천안UBF 이사야 32장 강해 의로통치하는 왕. 말씀 이사야 32장 1-이사야 32장 19. 요절 이사야 32장 1절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천안UBF 이사야 32장 강해 의로통치하는 왕. 말씀 이사야 32장 1-이사야 32장 19. 요절 이사야 32장 1절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 천안UBF, 천안ubf, cnubf.천안UBF, 천안ubf, cnubf.
  • Table of Contents:

천안UBF
천안UBF

Read More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 Article author: bedesd153.tistory.com
  • Reviews from users: 30435 ⭐ Ratings
  • Top rated: 3.5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한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한 …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한 의로운 왕이 나타나서 공의로 통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베데스다는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께 치료받았던 장소입니다. 치료의 기적이 나타난 장소입니다.
  • Table of Contents: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Read More

말씀을 사랑하는 자

  • Article author: blog.daum.net
  • Reviews from users: 23584 ⭐ Ratings
  • Top rated: 3.2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말씀을 사랑하는 자 이사야 32장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를 위하여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심판을 위하여 정사할 것이며 ☞ 레쩨데크 (qd,x,l])와 레미쉬파트 (fP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말씀을 사랑하는 자 이사야 32장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를 위하여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심판을 위하여 정사할 것이며 ☞ 레쩨데크 (qd,x,l])와 레미쉬파트 (fP … 이사야 32장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를 위하여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심판을 위하여 정사할 것이며 ☞ 레쩨데크 (qd,x,l])와 레미쉬파트 (fP;v]mil]) 개역 성경에서「레제데크」는 ‘공의로’ 「레미쉬파트」..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씀을 사랑하는..말씀을 사랑하는 자
  • Table of Contents:
말씀을 사랑하는 자
말씀을 사랑하는 자

Read More

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 Article author: otfreak.tistory.com
  • Reviews from users: 3118 ⭐ Ratings
  • Top rated: 3.6 ⭐
  • Lowest rated: 1 ⭐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티스토리 ·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 (1) 집안을 전체적으로 책임지고 꾸려가는 사람을 ‘가장(家長)’이라고 부릅니다. · (2) 가정보다 규모가 더 큰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티스토리 ·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 (1) 집안을 전체적으로 책임지고 꾸려가는 사람을 ‘가장(家長)’이라고 부릅니다. · (2) 가정보다 규모가 더 큰 …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성경 이사야 32:1-20 목차 전체 개요 패망한 유다에 공의로운 왕이 통치하심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1-8절). 그러나 여전히 어리석은 여자들이 통치하는 세상 나라..성서유니온,매일성경큐티,말씀묵상,새벽예배설교,새벽예배짧은설교,새벽예배10분설교,구약장이
  • Table of Contents: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태그

댓글0

공지사항

최근댓글

티스토리툴바

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Read More


See more articles in the same category here: Toplist.aseanseafoodexpo.com/blog.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2009년 3월 6일, 금요일

이사야 32장 1절-20절

오늘 본문은 앗수르의 압제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가 누리는 복에 대해서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현재가 고통스러운데 미래의 이야기를 하다니 누구를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그 상황이 영원히 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가 생활고로 인해서 힘들어 하며 “하나님!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매일 끼니를 잇기가 힘듭니다”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아늑한 가정에서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보라’는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현재는 전혀 감탄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식이 나오고 한숨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탄식을 감탄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이 있고, 정의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통치하면, 아래에 있는 관리들도 바르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를 통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바르게 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가장이,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옳게 행하면 그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바른 통치자들이 무엇과 같은지를 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지도자들이 ‘피하는 곳’, ‘가리는 곳’, ‘냇물’, ‘큰 바위 그늘’ 이런 존재가 되어 준다면 말들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면에 사람이 인생에 겪어야 하는 것을 ‘광풍’, ‘폭우’, ‘마른 땅’, ‘곤비한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누구나 다 피하고 싶은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질곡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한 때에 좋은 지도자나 좋은 사람들의 도움은 참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런 생의 걸림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우리의 메시아가 되시는 주님의 다스림과 우리의 피난처요, 보호자가 되시는 주님을 소망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5-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바르지 못한 사회 속에는 어리석은 사람과 우둔한(교활하고 사악하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대접을 받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사람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굶주린 사람과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습니다. 메시아가 통치할 때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흔히 아주 선하게 사는 사람을 지칭할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사람들에는 꼭 법이 있어서, 법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메시아가 통치할 때에 있게 될 사람들을 8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사람은 존귀한 일을 계획하게 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존귀한 사람’이 ‘존귀한 일’보다 더 중요하고, 더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존귀한 사람이 존귀한 일을 한다는 의미이고, 어떤 일 자체가 사람들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존귀한 일을 하고서도 존귀한 존재가 되지 못하면, 존귀한 자리에 가게 되었더라도 그 자리 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정치가로서, 관리로서 높은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높은 자리가 자신을 저절로 존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존귀한 일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존귀함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으면 신앙적인 일을 하고서도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9-14절은 부녀들, 특히 상류층의 여인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1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안일함은 그런데 본문에서 ‘안일한’은 ‘거만한’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염려없는’도 하나님과 연결이 될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의미이지만 사람이라 물건과 관련이 될 때는 거짓된 안정감이 되어 ‘경멸의 대상’이 됩니다. 옷을 벗어서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고 하는 것은 이 여인들은 자들이 입고 있는 좋은 옷에 염려가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좋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좋은 집에 살 것이고, 좋은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여러 사람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것을 ‘염려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그 무엇이든에 기대서 인생을 살면 기댄 그것 때문에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에 여인들의 인권은 인권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인의 잘함이나 잘못이 가정과 민족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건한 여인을 가정과 민족을 세우고, 불경한 여인은 가정과 민족을 허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1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하나님을 떠난 삶의 결과는 대궐이라 할지라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인구가 많아 번성하던 곳도 인적이 드물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벨’은 경사진 곳에 요새처럼 꾸민 왕궁과 귀족들의 주거지였습니다. 그런 곳이라 할지라도 토굴처럼 바뀔 것이고 짐승들이 풀을 뜯는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15-20절은 메시아가 다스릴 때에 회복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5절이 이렇게 일러줍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성령님이 임하게 되면 황무지가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영글게 하는 숲(곡창지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참 좋으신 분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외면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봐 주시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않으셔야 하는 것은 그 영(성령님)은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불의하고, 이기적이고, 하나님을 외면하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고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신 사랑이 오늘 하루도 우리를 감싸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비록 어려움이 있고, 짓눌림이 있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회복하심을 주시는 분이심을 확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의 순간마다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뒤돌아보건 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셨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올 한해도, 우리의 평생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보다 더 평안함이 없고, 더 안전함이 없음을 깊이 새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개입하심 속에 있는 인생이 가장 복됨을 깊이 새기는 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사야 32장 강해

1. 의로 통치하시는 예수님 사32:1~8

▶1절,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공평)로 다스릴 것이며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31:4~9),

이사야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1절의 ‘한 왕과 방백들’은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과 그 방백들’과 대비됩니다(31:9).

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들에 불과합니다.

여기 언급된 ‘왕’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서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킨 히스기야 왕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입니다.

‘의’(체데크)와 ‘공평’(미쉬파트)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입니다. 1:21, 27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은 <의와 공평>을 늘 기도해야 합니다.

‘내 편’이 없어야 하고, ‘내 라인’이 없어야 하고, 또한 ‘내 대적’이 없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만약, 자기 편을 두고, 자기 측근을 두어서 ‘패거리 리더십’을 발휘하면,

그건 하나님께 받은 지도력이 아니고, 그 지도력은 오래 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지도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력을 본 받아

<의와 공평>의 모범을 철저히 보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하며, 똑같은 기준과 잣대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존경받고 신뢰받는 지도자가 될 것이고,

그가 지휘하는 단체는.. 평안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2절,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악한 지도자가 들어서면,

그는 팀원들을 괴롭히는 ‘광풍’과 ‘폭우’

그리고 ‘마른 땅’과 ‘곤비한 땅’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통치는

본문 말씀대로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입니다.

지도자는 이 구절을 암송하며,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팀원들이, 다 그의 아래에서, 피난처와 그늘을 얻을 것입니다.

마지막 대환난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마에 인을 쳐 주시고, 환난 속에서 온전히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어떤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절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피난처, 냇물, 그늘’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3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됩니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29:18, 19)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6:9, 10)이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29:10)와 대조되는, 놀라운 회복입니다.

지금과 같은 마지막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통치를 받는 자들은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고 지혜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4절,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조급한 자(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자)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가 되어 혀를 잘 놀릴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주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무학 할머니가,

믿음이 없는 똑똑한 세상 박사보다.. 훨씬 더 총명하고, 지혜로울 때가 다반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 내가 조급하고,

내가 올바른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한다면 (언어 장애를 뜻하지 않음)

그것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나에게 나타나지 못하고,

대신에 ‘나의 통치, 나의 인간적 지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도록

내가 죽고, 겸손히 주님을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면,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간다’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기도의 혀가 풀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며, 조급한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내가 온전히 죽고, 내 속에 주님이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내가 조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신에,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조급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도 결코 조급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우리가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긴장’에 관한 설교는 기다림과 서두름

▶5절,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올바로 나타나는 곳에는,

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합니다.

▶6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성경에서 “어리석다” 는 것은 머리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신앙을 가진 자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입니다. (신32:6, 시14:1, 74:22).

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주위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지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관계가 파생되는 것입니다.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굶주린 자를 먹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조차 없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 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7절, 악한(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궤휼한 자” 는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와 ‘가난한 자’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자신의 죄로 인해 죽어서 지옥에 갈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어리석습니까?

어리석은 자들의 가치관은, 짐승처럼 오직 이 땅에만 있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또한 이 땅에 얼마나 궤휼한 자들이 많습니까?

오직 자신의 목적과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8절,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자’

(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는 7절의 ‘궤휼한 자’와 대조됩니다.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깁니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습니다.

‘서리라’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입니다. (40:8)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와 다스림이 충만하게 임한 자는

이제 세상을 바로 보는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가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서 상급 받고 영생을 누릴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통치도 받을 것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예수의 의로운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2. 안일한 자들에 대한 심판 사32:9~14

이사야 선지자는 의를 선포하는데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당시에 남유다의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본문에는 부녀자들을 향해 외쳤는데,

신구약에는 종종 이스라엘을 이렇게 ‘하나님의 부녀/신부/여자’로 표현합니다.

그러니 거기엔 남자도 포함된, ‘이스라엘 민족’을 뜻합니다.

▶9절,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본문은 추수 절기에 춤을 추는 유다의 여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삿21:20~23참조)

선지자는 그들을 ‘안일한 부녀’, ‘염려 없는 딸들’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풍족한 수확의 기대와 즐거움에 도취되어

다가올 재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재난의 때는 어김없이 임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부녀들의 허영과 교만을 그린 3:16~4:1과, 본문을 비교해 보십시오.

▶10절,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직역하면 ‘너희 자신 만만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여자들아, 너희가 몸을 떨 것이다.’

즉, 두려움에 전율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극히 대조되는 앞말과 뒷말의 결합을 통하여, 선지자는 충격을 가중시킵니다.

▶11절,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이제 선지자는 재난의 때에 그들이 취해야 될 마땅한 태도를 설명합니다.

평상복을 벗고, 베로 허리를 동이는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큰 재난을 당했을 때 슬픔을 나타내는 관습입니다.

(3:24, 15:3, 22:12, 욜1:13, 나훔2:7)

▶12절,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이전에 풍성한 곡식을 산출했던 좋은 밭과 열매 많던 포도나무가

재난으로 황폐하게 변해버리는 것,

곧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것이, 그들이 애통하는 이유입니다. (16:7~11)

▶13절,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내 백성의 땅’과 ‘형극과 질려’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히 선택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출 3:8,17;13:5;33:3)에서

어떻게 ‘형극과 찔레’가 나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1:7, 5:6, 7:23)

선지자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야기되는 황폐함이

땅에만 아니라, 심지어 희락의 성읍, 기쁨이 넘치는 집들까지도 미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음절에서 확인됩니다.

▶14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요새)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우리는 부흥을 바라고, 주님의 임재를 바랍니다.

당연히 바래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정말 임하시고, 임재하시면.. 좋은 일도 나타나지만

동시에 심판도 나타납니다.

주님은 절대로 의로우셔서,

참으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사32장 1~8절은.. <주님의 의로우신 통치>, 즉 주님의 임재를 말씀합니다.

이어서 32:9~14절은.. 그때 받는 복이 아니라, 그때 받는 심판을 예언합니다.

이어서 32:15~20절은.. 그때 받는 복(회복)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누가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는가 하면..

열심히 믿어보려고 하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신자에게..

축복이 아니라, 징계가 임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임재하시니까,

그가 축복받기 이전에,

먼저 징계가 임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믿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지도 않으면..

의외로 그의 삶이 평탄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버려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믿으려 하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신자에게..

주님이 임재하시고, 징계가 임하지만,

징계로 연단을 거친 자에게는.. 회복과 진정한 축복이 임합니다.

아래 구절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3. 회복된 백성들 사32:15~20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처음에는 징계를 받고, 망하고, 회개하는 기간을 거쳐서 (32:9~14)

이제 회복의 단계,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온전히 주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15절,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은.. 숲으로 변하게 되리라

회복은.. 위에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때가 언제일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반드시 도래합니다.

성령이 부어지면.. 모든 것이 변화될 것입니다.

영을 부어 주시는 역사는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곳에서만 일어납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될 때, 거기에는 무력함과 불의만이 판을 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인생을 다스리실 때

‘위에서 영을 부어주셔서’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은.. 숲으로 변하게 되리라

는 풍요로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16절,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물질의 풍요로움은 축복의 서막입니다.

선지자는 변화된 땅에 거할 변화될 백성들의 영적 특성에 주목합니다.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밭에 거한다’는 말은,

정의와 공의(공평)이라는 새 시대의 규범들이

온 땅 위에 편만해질 것을 의미합니다.

‘정의’(체다카)와 ‘공평’(미쉬파트)은

‘하나님을 높임’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함’이라는

율법의 두 기본적인 의무 조항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말들입니다.(Calvin)

▶17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주어짐을 역설합니다.

이를 신약의 언어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18절,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본문은 그 의미상 13절과 대조됩니다.

한때 희락과 기쁨이 감돌던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형극과 질려가 자라던 ‘내 백성’의 집에

하나님의 의로부터 나오는 참된 평화가 깊이 스며들 것입니다.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 그리고 ‘조용히 쉬는 곳’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곳이겠거니와

이러한 곳에서 거할 수 있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경건한 성도들만이 누릴 것입니다. (요14:27 참조).

▶19절,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비록 우박이 삼림에 쏟아져 내리고 성읍은 평지처럼 될지라도’ 라는 뜻입니다.

▶20절,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편안하게 농사짓는 행복한 전원시적인 분위기로

본장은 마감됩니다.

물기 마를 염려가 없는 땅,

곧 ‘물가’에서는 농부가 뿌린 씨앗마다 풍성한 수확으로 결실합니다.

소와 나귀 등의 가축들을, 씨 뿌린 밭에서 모는 것은,

오히려 가축을 이끌어 일찍 나온 잎들을 뜯어먹게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땅이 너무나 비옥하여 곡식이 속히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풍성한 생산력은, 성경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복주심의 결과로서 묘사됩니다.

30:23~25을 참조하십시오.

정리하면,

본 단락은, <회복된 성도의 참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15절)

성령이 임한 심령만이 아름다운 밭이 될 것입니다.

둘째.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 함께 하십니다.(17절)

세상이 주는 화평과 평안과 안식은 잠간이지만

예수님의 통치로 인한 화평과 평강과 안전은 영원한 것입니다.(요14:27)

셋째. 우리의 육체가 거한 곳도, 복된 곳이 될 것입니다.(19~20절)

우리의 마음만 평안과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가 거하는 곳도 안전하고, 편히 쉬는 곳이 될 것이며,

땅도 복을 받고 들짐승도 복을 받는 복된 곳이 될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서 하신 말씀과 비슷한 육적인 복을

의로운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마치는 말, 안일한 신앙은 안 됩니다. (9~14절)

여러분! 안일한 마음 버리고, 긴장하며 예수 믿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예수님 오실 지 안 오실지 모르지만

만약에 오신다면 이런 안일한 신앙으로 적당히 예수 믿어 가지고서는

(현재+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철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여 남유다를 쳐들어오는데도

남유다 백성들은 안일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목이 터져라고 외쳐도 무시하고 외면했고 비웃었습니다.

오늘날도 원수 마귀 사탄은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쳐들어오고 있는데도

믿음 있는 자들은 전혀 그 날을 준비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날이 어떤 날이 될지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신랑이 오고 계신다” “기름 준비하라” 고 해도 외면하고 있고,

무시하고 있고,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안일한 신앙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의 즐길 것 다 즐기고, 나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그 날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준비도 관심도 없는 시대가..

본문의 이사야의 시대요, 또한 오늘날의 시대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25장에서 기름 준비 못한 다섯 처녀의 모습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등만 가진 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미련한 자” 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그 날을 준비하시는 지혜로운, 깨어있는 (본문에서는 회복된)

다섯 처녀의 모습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스크랩] 이사야 32장 주석

이사야 32장 주석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31:4-9), 선지자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 즉 새로운 정부의 출현과 더

불어 시작된다. 이제 동참할 ‘한 왕과 방백들’은 눌려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

과 그 방백들’과 대비된다(31:9).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

트라에들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 언급된 ‘왕’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서 여호와 신

앙을 부흥시킨 히스가야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이다. 선지자의 시선은 당대를 넘어 먼 미래에 미치며 그의 예언은 메시야 시대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성취되어진다.

의로…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 ‘의'(* ,체데크)와 ‘공평'(* ,미쉬

파트)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이다(1:21,27). ‘의’

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제된 올바른 행동의 원리라면, ‘공평’은 그 원리의 구현이

라 할수 있다. 이 시점에서 선지자는 전자를 왕의 덕목에, 후자를 방백들의 덕목에 각

각 적용시킨다.

=====32:2

광풍을 피하는 곳…같으니 – 악한 정부의 통치가 백성을 괴롭히는 ‘광풍’과 ‘폭

우’ 그리고 ‘마른 땅’과 ‘곤비한 땅’과 같다면, 선한 정부의 통치는 그것들로부터의

백성을 보호해주는 ‘가리는 것'(* ,마하베), ‘덮는 것'(* ,세테르), ‘시

냇물'(* ,펠레그), ‘무거운 바위의 그늘'(* – ,첼 셀라-카베그)

과 같을 것이다. ‘광풍-폭우’와 ‘마른 땅-곤비한 땅’은 팔레스틴 땅의 여행객들을 위

협하는 대표적인 자연 재해들로서,전자는 큰 비를 동반한 폭풍을, 후자는 뜨거운 햇

볕으로 사람의 목을 타게 만드는 무서움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4:6;25:4

을 보라.

=====32:3

보는 자의 눈이…기울어질 것이니 –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

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된다

(29:18,19).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6:9,10)이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29:10)와 대조된 것이다. ‘듣는자의 귀가 기울어진다’는 말은 ‘주의 깊게 경청한

다'(* ,카솨브)는 뜻이다.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말을 분명히 할것이라 – 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

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조급한 자'(* ,님하람)의 마음이 사물의 본성을 파

악하는 참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

(* ,일김)가 되어 혀를 잘 놀릴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

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일김’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를 경멸하는

자’를 빗된 말(28:11 참조,Knobel,Drechsler)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무지

한 자들을 가리킨다.(Delitzsch,Alexander).

=====32:5

어리석은 자를…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 이와 같은 영적인 명징(明澄)함의

결과로,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

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 ,나발)는 ‘사악한 자’로도 번역 가능

하다. ‘궤휼한 자’라 번역된 ‘킬라'(* )는 ‘간교하다’는 뜻을 가진 ‘네킬라’

(* )의 단축형 (Gesenius) 혹은 ‘낭비하다’는 뜻을 가진 ‘칼라'(* )에서

파생된 말(Hitzig)로 설명되기도 하니 확실하지는 않다.

=====32:6,7

본문은 ‘왜냐하면'(* ,키)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지자는 ‘어리석은 자’와 ‘궤

휼한 자’가 전에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명예로운 칭호(관직)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

유를 그들의 본성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어리석은 자는…없어지게 함이며 –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머리의 둔함에 관련된

말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이다(신 32:6; 시 14:1 ; 74:22). 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

지른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 관계가 배태(胚胎)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린 자의 ‘심령(* ,네페쉬)을 비게 한다”는 말은, 굶주린 자

를 먹이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조차 없게 한다는 말이

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궤휼한 자는…그리함이어니와 – ‘궤휼한 자’는 재물과 이권을 획득하는 일에 혈안

이 되어 있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 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

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 ,아니윔)와 ‘빈핍

한 자'(* ,에브욘)이다.

=====32:8

고명(高明)한 자는…서리라 – ‘고명한 자'(* ,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

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천성적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다. 그는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

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쓴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는다. ‘서리라'(* ,쿰)는

말은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이다(40:8).

=====32:9

너희 안일한 부녀들이…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 본문은 추수 절기에 춤을 추는

유다의 여자들에 대해서 말한다.(삿 21:20 이하, G.E.Wright). 선지자는 그들을 ‘안일

한 부녀’, ‘염려 없는 딸들’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이들은 풍족한 수확의 기대와 즐거

움에 도취되어 다가올 재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에게도 재난의 때는 어김없이 임할 것이다. 예루살렘 부녀들의 허영과 교만을 그린

3:16-4:1과 본문을 비교하라.

=====32:10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 직역하면 ‘너희 자신 만만하

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여자들아 너희가 몸을 떨것이다(즉, 두려움에 전율할 것이다)’

이다. 극히 대조되는 앞말과 뒷말의 결합을 통하여 선지자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32:11

옷을 벗어…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 이제 선지자는 재난의 때에 그들이 취해야

될 마땅한 태도를 설명한다. 평상복을 벗고 가슴을 치는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큰 재

난을 당했을 때 슬픔을 나타내는 관습화 된 것이다.( 3: 24 ; 15:3 ; 22:12 ;욜 1:13;

나2:7).

좋은 밭…포도나무를 위하여 – 이전에 풍성한 곡식을 산출했던 좋은 밭과 열매 많

던 포도나무가 재난으로 황폐하게 변해버리는 것, 곧 삶의 터전을 상살하는 것이 그들

이 애통한 이유인 것이다(16:7-11).

=====32:13

형극과 질려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 ‘내 백성의 땅’과 ‘형극과 질려’는 서로 어

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히 선택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출 3:8,17;13:5;33:3)에서 어떻게 ‘형극과 찔레’가 나리

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7;5:6;7:23).

희락의 성읍…나리니 – 본문은 불변사 ‘키'(* )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그것은

앞의 사상을 확대, 설명하는 ‘…까지도’로 해석함이 무난하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저

주에서 야기되는 황폐함이 땅에 만이 아니라 심지어 희락의 성읍, 기쁨이 넘치는 집들

까지도 미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Calvin). 이것은 다음절에서 확인된다.

=====32:15

부터 우리에게 부어질 때까지’이다. 성령을 부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획기적으로 변

화시키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기까지 재난은 지속 된다. 그때가 언제일는지 아

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반드시 도래한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변화 될 것이다. 영을 부어 주시는 역사는 하나님의 왕권 확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만 일어난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될

때 거기에는 무력함과 불의만이 판을 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인생

을 다스리실 때 비로소 이 땅은 풍요함을 되찾고 집집마다 희락이 찾아 들며 나라 전

체에 평안이 깃들게 될 것이다.

광야가 아름다운 발이 되며…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야기되는 복스러운 변화는 먼저 땅에서부터 나타난다. ‘광야’ 곧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아름다운 밭’ 곧 경작된 땅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거둔 소출도

나중에 산출될 그 풍성함에 비추어 보면 야생숲으로 여겨질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

다.

=====32:16

공평이…있으리니 – 물질의 풍요로움은 축복의 서장에 지나지 않는다. 선지자는

변화된 땅에 거할 변화될 백성들의 영적 특성에 주목한다. ‘곡식을 산출하는 비옥

한 밭이나 경작되지 않는 목초지에도 의와 공평이 거한다’는 말은, ‘의와 공평이라는

새 시대의 규범들이 온 땅 위에 편만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 ,체

다카)와 ‘공평'(* ,미쉬파트)은 ‘하나님을 높임’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

함’이라는 율법의 두 기본적인 의무 조항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말들이다(Calvin,

Kissane).

=====32:17

의의 공효는…평안과 안전이라 –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주어

짐을 역설한 말이다. 이를 신약의 언어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32:18

본문은 그 의미상 13절과 대조된다. 한때 희락과 기쁨이 감돌던 곳이었으나 하나

님의 심판으로 형극과 질려가 자라던 ‘내 백성’의 집에 하나님의 의로부터 발출되

는 참된 평화가 깊이 스며들 것이다.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 그리고 ‘종용히 쉬

는곳’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곳이겠거니와 이러한 곳에서 거할 수 있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경건한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요

14:27 참조).

=====32:19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심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 본문은 세가지로 해석 가능하

다. (1)’그리고 삼림은 철저히 가라앉고 성읍은 전적으로 황폐해지리라'(RSV). (2)’그

때에는 삼람 비탈이 서늘하겠고 성읍은 평화롭게 될 것이다'(NEB). (3)’비록 우박이

삼림에 쏟아져 내리고 성읍은 평지처럼 될지라도'(NIV). 문맥상 세번째가 가장 무난하

겠다(G. W. Grogan).

=====32:20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너희는 복이 있으니라 – 하나님의 백성이 편안하게 농

사 짓는 행복한 전원시적인 분위기로 본장은 마감된다. 물기 마를 염려가 없는 땅, 곧

‘물가’에서는 농부가 뿌린 씨앗마다 풍성한 수확으로 결실한다. 소와 나귀 등의 가축

들을 씨뿌린 밭에서 몰아내는 것이 상례임에도 여기에 나오는 농부는 오히려 가축을

이끌어 일찍 나온 잎들을 뜯어먹게 한다. 왜냐하면 땅이 너무나 비옥하여 곡식이 속히

자라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풍성한 생산력은 성경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복주심의 결과

로서 묘사된다. 30:23-25을 참조하라.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So you have finished reading the 이사야 32 장 강해 topic article, if you find this article useful, please share it. Thank you very much. See more: 이사야 33장 주석, 이사야 33장 설교

See also  Top 25 자기 소개서 3 번 예시 All Answers

Leave a Comment